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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르디의 생각

[평화로운 세상만들기] 내로남불 하지 말자

by 뮤르디7 2022.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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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내로탐불 하지 말자. 

나는 싫어하고, 경계하는 것이 2가지가 있다.

(물론 세상에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싫어하는 것 투성이지만)

1번은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내가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남이 하면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이 있다. 본인이 할 때는 "뭐 그럴 수 도 있지", 남이 하면 "왜 저렇게 하는 거야!!!!". 주변 사람들도 자주 하는 것을 보고, 나도 무심코 많이 하는 경우도 많다. 남에게는 엄격하지만 나에게는 너그러운 그런 것 아닐까.. 물론 스스로 엄격해지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세상 편하게 사는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흔히들 ' 진상'이라 부르는 사람들 대부분의 태도는 이렇다는 것.. 처음은 작게 시작했겠지만, 나중에는 그런 태도가 쌓이고 쌓여, 철면피가 되고... 유튜브에 올라오는 것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나는 한창 운전을 할 때, 차가 없더라도 저 멀리서 무단횡단 하는 사람을 본다면 속으로 엄청 욕을 했고, 자전거 타고 길을 휙휙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서도 속으로 엄청 욕했다. 위험하게 저게 뭐하는 짓이냐고. 그런데 내가 출근시간에 쫓기고, 귀찮아서, 등등의 이유로 무단횡단의 욕구와 절제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가끔은 건너가버리는 모습을 생각해보니, 나도 내로남불이구나 싶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하게 되는, 자신의 편의를 위해 기준 잣대를 잠깐만 바꿔버리는.. 

나야 뭐 이렇게 항상 갈등속에서 살지만, 가끔은 살다 보면 사회성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철면피들도 만나기 마련이다. 말 그대로, 인간 내로남불. 적색신호에 다짜고짜 차 앞으로 뛰어들어, 경적을 울리면, 왜 난리냐고 적반하장... 본인이 후진하다 박아놓고 왜 거기 있었냐는 뭐 그런... 한문철의 블랙박스(유튜브)를 보면 많이 나온다. 운전으로만 예를 들었지만, 생활 속에서도 많이 만날 수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반말 날려놓고, 본인이 반말 들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욕을 하는.. 여하튼...

그런 흔히들 '진상'이라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기본 탑재된 태도의 디폴트(기본) 값이 '내로남불'이라는 것.

물론 이것도, 나의 짧은 인생에서 많은 진상들을 봐온 사람으로서, 추론일 뿐이고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면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어디서 들어본 말을 변형하여 쓰자면, "모든 내로남불들이 진상은 아니지만, 모든 진상은 내로남불이다." 정도로 보편화시킬 수는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볼 때마다 다짐한다. 그래서 항상 내 편의를 위해 기준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과, 내로남불 하지 말아야지 하는 절제 그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간다. 남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나에게 적용하고, 그 기준에 맞게 살아갈 수 있게. 하다못해, 암묵적으로 약속된 적정선을 어기는 사람을 당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너는 지난번에 이렇게 했지 않았냐! 하며 반박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정상적인 양심이 있고, 스스로에 책임질 줄 아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나처럼 항상 갈등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이 갈등 자체가 나를 객관화시켜 판단하는 연습이고, 양심의 생활 속 실천이다. 인격수양은,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나오는 일화, 표류하는 배 위에서 죽어가는 동료 선원을 잡아먹고 생존할 것인가 하는, 거창한 딜레마 속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만큼 잔잔한 갈등 속에서, 차근차근 스스로를 다루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내로남불 하지 말고, 스스로의 말과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진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나 스스로부터 작은 실천부터 하자. 

(진상한테 데여서 억하심정으로 쓰는 글 아니고, 그저 싫어하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글로 쓰려다 길어졌을 뿐이다.)

 

2부에서는  '아는 것과 알 것 같은 것을 혼동하는 것(아는 척)'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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